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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조 교수가 밝힌 ‘일본의 종전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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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ans339 작성일26-04-10 11:20 조회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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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퀵플렉스카페 김기조 교수가 밝힌 ‘일본의 종전 공작’1942년 뉴기니 전투에서 욱일기와 일본도를 들고 연합군 진영으로 돌격하는 일본군.조선일보 8일 자 A28면의 ‘제대로 쓰는 해방 전후사’에서 문유미 스탠퍼드대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한반도 점령에 관한 미국의 정치적 의도가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1945년 5월 23일 자 삼부조정위 문서와 그 첨부 자료(SWNCC 87/1/D)다. …38선 획정 문제를 깊이 연구한 김기조 교수에 따르면, 이 문서가 작성될 즈음 일본은 중국과의 평화 협상을 추진하면서, 후버 전 대통령을 통해 조선과 대만의 보유를 전제로 한 ‘조건부 항복’을 미국과 교섭 중이었다고 한다. 미국이 카이로 공약을 지킨 것은 천만다행이었다.”도대체 이게 무슨 얘길까? 일본이 전쟁에서 지더라도 조선과 대만만큼은 계속 ‘식민지’로 보유하려 하고 있었다고?지금은 절판돼 중고서점에서 정가(3만원)의 4배 넘게 호가되고 있는 김기조 외교안보연구원 명예교수의 2006년 연구서 ‘한반도 38선 분할의 역사’(제2증보판·한국학술정보)에서 그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1943년 12월 1일 미·영·중의 3거두인 프랭클린 루스벨트, 윈스턴 처칠, 장제스는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회담을 갖고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촉구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일본군은 그들이 탈취한 모든 영토에서 축출돼야 하며, 그의 주권을 일본 본토 4개 섬 안으로 한정하고, 한반도는 적당한 시기에(in due course) 독립시켜야 한다’고 공약했다. 이 어구의 배후에는 전후에 연합국들이 한반도를 신탁통치하려는 복안이 숨겨져 있었다.그런데 카이로 선언에 대한 일본의 반응은 어땠는가? 당시 일본 외상 도고 시게노리(東鄕茂德)는 이렇게 비판했다. 21세기의 한국인이 읽어 보면 실로 가슴 철렁할 내용이다.“그(카이로) 선언 중에는 일본 영토의 일부를 반환할 것과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일본의 강화 노력에 장애가 될 것이며, 국제적으로 인정된 청일전쟁에서 얻은 조선 등 영토의 일부를 반환하라는 것은 역사적 기정사실을 변경해 일본을 침략 전쟁으로 몰고 있는 것으로서 일본의 국민 감정상 용납될 수 없으며, 따라서 일본의 평화 노력에 대단히 장애가 됐다.”도고 시게노리, 1941~42, 1945 일본 외무대신.‘일본의 평화 노력’이라는 대목에서 코웃음이 터질 지경이지만, 이것은 ‘청나라의 영토였던 조선이 1894년의 청일전쟁으로 일본 영토가 됐다’는, 불과 몇십 년 전의 역사김기조 교수가 밝힌 ‘일본의 종전 공작’1942년 뉴기니 전투에서 욱일기와 일본도를 들고 연합군 진영으로 돌격하는 일본군.조선일보 8일 자 A28면의 ‘제대로 쓰는 해방 전후사’에서 문유미 스탠퍼드대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한반도 점령에 관한 미국의 정치적 의도가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1945년 5월 23일 자 삼부조정위 문서와 그 첨부 자료(SWNCC 87/1/D)다. …38선 획정 문제를 깊이 연구한 김기조 교수에 따르면, 이 문서가 작성될 즈음 일본은 중국과의 평화 협상을 추진하면서, 후버 전 대통령을 통해 조선과 대만의 보유를 전제로 한 ‘조건부 항복’을 미국과 교섭 중이었다고 한다. 미국이 카이로 공약을 지킨 것은 천만다행이었다.”도대체 이게 무슨 얘길까? 일본이 전쟁에서 지더라도 조선과 대만만큼은 계속 ‘식민지’로 보유하려 하고 있었다고?지금은 절판돼 중고서점에서 정가(3만원)의 4배 넘게 호가되고 있는 김기조 외교안보연구원 명예교수의 2006년 연구서 ‘한반도 38선 분할의 역사’(제2증보판·한국학술정보)에서 그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1943년 12월 1일 미·영·중의 3거두인 프랭클린 루스벨트, 윈스턴 처칠, 장제스는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회담을 갖고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촉구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일본군은 그들이 탈취한 모든 영토에서 축출돼야 하며, 그의 주권을 일본 본토 4개 섬 안으로 한정하고, 한반도는 적당한 시기에(in due course) 독립시켜야 한다’고 공약했다. 이 어구의 배후에는 전후에 연합국들이 한반도를 신탁통치하려는 복안이 숨겨져 있었다.그런데 카이로 선언에 대한 일본의 반응은 어땠는가? 당시 일본 외상 도고 시게노리(東鄕茂德)는 이렇게 비판했다. 21세기의 한국인이 읽어 보면 실로 가슴 철렁할 내용이다.“그(카이로) 선언 중에는 일본 영토의 일부를 반환할 것과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일본의 강화 노력에 장애가 될 것이며, 국제적으로 인정된 청일전쟁에서 얻은 조선 등 영토의 일부를 반환하라는 것은 역사적 기정사실을 변경해 일본을 침략 전쟁으로 몰고 있는 것으로서 일본의 국민 감정상 용납될 수 없으며, 쿠팡퀵플렉스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