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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eojfoa 작성일26-07-12 10:16 조회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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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리디아는 모델이 되었고, 비서가 되었으며, 작품 정리를 돕는 대 화가의 조력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티스의 예술 세계를 가장 가까이에서 이해하는 동반자가 됩니다.앙리 마티스와 리디아 델렉토르스카야5.깊은 통찰력과 깊은 가슴을 가진 대화가,마티스는 리디아의 고결한 내면을 존중했고, 리디아 역시 거장의 위대한 창조 과정을 곁에서 돕는 것 자체에 인생의 모든 행복을 걸었습니다. 비록 이 깊은 관계 때문에 마티스의 아내가 오해하여 이혼 소송을 제기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마티스 - 숲속의 님프 1935년 캔버스에 유채 242x195cm 마티스 미술관 / 팔 - 1938년 개인소장마티스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리디아는 가방 하나만 든 채 그 집을 조용히 걸어 나왔습니다. 장례식조차 참석하지 않은 채, 오직 그가 남긴 예술적 유산을 정리하고 연구하는 데 남은 평생을 바쳤습니다.세상은 늘 뜨겁고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에 열광합니다. 하지만 어떤 관계는 사랑이라는 이름조차 필요하지 않습니다. 리디아 델렉토르스카야는 마티스의 아내도 아니었고 연인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누구보다 오랫동안 그의 곁을 지켰고, 누구보다 깊이 그의 예술을 이해했습니다.음악 - 1939년 올브라이트 녹스 갤러리(미국 뉴욕)1941년 마티스가 십이지장 암 수술을 받고 장폐색으로 사경을 헤매며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었을 때도, 그녀는 밤낮으로 그의 손발이 되어 헌신적으로 간호했습니다. 붓을 들 기운조차 없는 노년의 화가에게 종이와 가위를 쥐여주며 끝까지 창작을 이어가게 한 리디아야말로, 마치 신이 마티스의 만년 예술을 완성하기 위해 보내준 귀인처럼 보입니다.'사랑보다 깊었던 동행'달팽이 1953년 뉴욕 현대미술관 / 앙리 마티스 - Nadia With Smooth Hair리디아의 이러한 헌신이 없었다면 현대 미술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방스 로사리오 성당(Chapelle du Rosaire de Vence)의 눈부신 스테인드글라스도, 마티스 만년의 찬란한 컷아웃(Cut-out) 작품들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 여성의 조건 없는 사랑과 조력은 예술가를 구원했고, 나아가 20세기 미술사의 지형도를 바꾸어놓는 위대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세속적인 욕망과 탐닉의 홍수 속에서, 이토록 아름답고 고결하게 서로의 삶을 빛내준 동행이 또 있을까요?하지만 어느 날 마티스는 문득 그녀의 독특한 분위기에 시선을 빼앗겼습니다. 턱을 괴고 우울하게 앉아 있는 리디아의 금발과 푸른 눈동자, 그 속에 서린 이국적인 슬픔을 본 순간 마티스의 가슴속에 거대한 예술적 불꽃이 튀었습니다.아~~~~~~~~~~~~~ 그리고.....1.강렬한 색채로 시대를 뒤흔든바로 1910년 러시아 토볼스크에서 태어난리디아 델렉토르스카야(Lydia Delectorskaya 1910~1998)입니다. 그녀의 유년 시절은 잔인한 운명의 연속이었습니다. 소아과 의사였던 부모를 전염병으로 잇달아 잃고 12세에 고아가 된 리디아는 17세에 볼셰비키 러시아 혁명의 격변 속에서 조국을 떠나 이웃 나라를 떠돌다 난민 자격을 얻어 프랑스로 향했습니다.노년의 화가를 다시 살게 한 귀인6. 한 여인의 위대한 헌신이야수파 거장 앙리 마티스,앙리 마티스와 리디아 델렉토르스카야말없이 내미는 손길,마티스는 자신의 그림 세계에서 모델과의 관계는 지극히 정제되고 고결한 플라토닉(Platonic)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제 개인적인 감상입니다만 피카소의 그림에서는 파괴적이고 왜곡된 육체의 욕망이 이글거린다면, 마티스의 화면에서는 고도의 절제미와 절대적인 구도의 미학이 흘러넘칩니다. (그렇다고 제가 피카소 그림을 싫어하진 않습니다. 저도 피카소 그림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흉내를 낼 수가 없어 탈이죠.)반면 마티스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는 모델을 욕망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예술적 존재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마티스 역시 아름다운 여성을 즐겨 그렸지만, 그 그림들에는 피카소처럼 폭풍 같은 감정보다는 균형과 절제가 흐릅니다. 그래서 리디아와의 관계 역시 스캔들이 아닌 신뢰로 이어졌습니다.루마니아 풍 블라우스를 입은 리디아 / 리디아의 초상 1945년 푸쉬킨 미술관아롱지는 색채 속에서 피어난꿈 - 1940년 개인소장 / 루마니아 풍 블라우스를 입은 리디아 1940년 조르주 퐁피두 센터사랑이라 부르기엔 너무 조용했고,'리디아 델렉토르스카야'푸른 옷을 입은 여인 1937년 캔버스에 유채 92.5x73.5cm 필라델피아 미술관 / 나뭇잎을 배경으로 안락의자에 앉아있는 누드 1936년 72.5x60.5cm 마티스 미술관리디아의 초상 1947년 에르미타쥬 미술관 / 나뭇잎을 배경으로 안락의자에 앉아있는 누드 1936년 캔버스에 유채 72.5x60.5cm 마티스 미술관리디아 델렉토르스카야여자의 얼굴 1935년 에르미타쥬 미술관 / 젊은 여인의 초상, 리디아 1935년 에르미타쥬 미술관3.피카소의 폭풍 같은 불꽃보다는그리고 끝까지 곁을 지켜주는 한 사람의 헌신이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처음 리디아가 마티스의 집안에 발을 들였을 때는 마티스의 아내 아멜리를 돕는 간병인이자 가정부, 일꾼이었습니다. 마티스 역시도 처음 몇 년 동안 리디아는 그저 그런 집안일을 돕는 조용한 조력자로만 대했답니다.앙리마티스 (Henri Matisse) 1913년 사진 /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자화상 1906년 55x46cm 코펜하겐 국립미술관마티스가 색채로 행복을 그렸다면, 리디아는 그 행복이 사라지지 않도록 묵묵히 지켜준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위대한 예술은 천재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리디아 델렉토르스카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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